리딩 펠타누님!
콜튼은 자신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에 놓인 인물입니다. COC적인 상황에 처하기 전에는 적당주의로 살았을 것 같아요. 호불호가 뚜렷한 성향으로 보이는데 사방에 맞춰 살려고 ‘선택’한 것 같거든요. 특별히 싫어 죽겠다가 아닌 상황이라면 무난하게 넘기는 것을 생존 원칙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손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저 어디 크게 눈 밖에 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얇고 길게 살기를 목표로 둔 것은 환경과 태생을 고려해서 나온 선택이지 나의 내면이나 욕구를 고려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삶이 별로라거나 싫다는 건 아니며, 어느 정도는 원했을 것이고, 그래서 목표로 두었을 거예요. 정략결혼을 통해 헬레니아를 벗어난다는 걸 포함해서요. 다만, 나 자신은 이것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욕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한다와 욕망한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원한다’는 건 내게 필요한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가능한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모든 것입니다. 피상적이거나 즉각적으로 반영되길 바라는 것들이 아닐까 해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나 의욕 등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거나,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바람 등이 있을 것입니다. ‘욕망한다’는 것은 좀 더 심화 과정을 거친 욕구입니다. 가령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욕망은 내가 지금까지 가질 수 없었거나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꼭 먹고 싶다거나 가지고 싶다는 간절함이나 이유가 담겨있습니다. 내면에서 해소되지 않는 결핍이나 갈증을 느끼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욕망이 더 끈적거리고 진득한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가져서 해소되는 건 일시적인 욕구인 셈이죠. 욕망은 내면의 소리고, 무의식에서 갈망하는 깊은 꿈이자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표지판 중의 하나입니다.
콜튼에게는 욕망하는 것이 빠져있지 않았나 싶어요.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적당히 살아가는 건 편해서 바란 일이에요. 현대인으로 치면 큰 꿈은 없고 수도권 근처에서 몇 평의 집이 있고 반려동물을 기르며 그럭저럭 살림이 되는 수입이 있고 가끔 사치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의 어떤 지점에 세우고 싶은 목표이지 그것이 나의 내면에서 진정으로 바란 욕구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COC적인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 비로소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는 적당한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엄청난 일들이 휩쓸고 지나갔고 어떻게든 해결도 한 지금은 한 단계 성장해서 잠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모양입니다. 자신이 바란 방향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이루었고 무엇보다 뜻하지 않게 커다란 성취를 해내지 않았나 싶어요. 그중에 하나는 의료가 아닐까 싶어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질은 콜튼의 예상에 없던 상황이었을 것 같고, 이것이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고 업적을 남기게 되면서 성취욕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한 번 느낀 성취감은 다시 잊기도 어렵습니다.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콜튼은 의학 관련 분야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여기에 COC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보이는 것 이상의 더 깊은 세계가 우리 삶 안에 있다는 걸 깨달으며 전에 바랐던 꿈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후계자 때려치우고 영지 밖으로 가서 조용히 산들 COC적인 상황은 그곳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오히려 모르고 있으면 대비도 못 한 채 개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테니, 조금이라고 알고 대비할 수 있는 쪽에 머무르는 것이 유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느낌의 관점에서 콜튼은 이전의 목표를 내려놓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콜튼의 성향을 살펴보면 한 곳에 머무를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얕고 넓게 대인관계를 가꾸는 것을 즐기는 것 같네요. 활동성이 곧 콜튼의 원동력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들입다 연구하는 일은 사실 잘 맞지는 않아 보여요. 의학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건 인생에 직결되는 커다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험이나 연구 과정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어요. 동기부여가 잘 되는 일이라 잘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성취욕을 느끼고 나서는 점점 더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생겨났을 것 같구요. 내면에 열이 많은 인물이라서 방출해 줘야 하는데, 이것이 이전에는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방탕하게 사는 것으로 해소했다면, 의학을 접한 다음에는 연구 성과로 열을 해소하게 된 것 같습니다. 즉, 자신이 필요했고 재미도 느꼈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 붙어있었던 것이지 재무장관 같은 일을 시키면 냅다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내면에서는 빠르게 잔머리가 굴러가고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냅니다. 임기응변이 좋고 위험을 잘 감지하죠. 촉이 좋은 덕분에 위험도 살살 피해 갑니다. 은근히 신중한 면이 있어서 생각보다 까다롭네, 라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비굴하고 싹싹해서 뭐든 다 해줄 것처럼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의미지요. 속으로 이건 해주고 마는 게 낫지와 안 해줘도 나한테 불이익 없음, 이라는 생각이 빠르게 오가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배 까고 눕진 않습니다. 자존심은 없어도 자존감이 높아서 필요에 따라 고개를 들고 숙일 수 있습니다. 마냥 누군가의 아래서 손 비비고 있을 인물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왕족의 피가 이어졌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할 것 같아요. 물렁해 보이는데 상대의 틈을 파고 들어서 날카롭게 한 수 찌르고 가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만만치 않아요. 콜튼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물고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쥐가 아니며 오히려 쥐를 잡는 고양이의 위치에 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치여서 나는 이런 복잡한 것이 싫다며 밖으로 뛰쳐나갔을 뿐이지 제대로 발톱도 이빨도 잘 달려있습니다. 즉, 언제든 자신의 무기를 갈아서 쓸 준비가 된 사람이고, 특별한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무기를 갈고 닦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서 위기에 강합니다. 평화로울수록 나태해지는 성향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라도 그러할테지만, 마음을 너무 푹 놓아버린다고 할까요. 타성에 쉽게 젖고 쉬운 길을 골라 가려고 해서 도드라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위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나 과감성도 있는 편이고, 목표를 정하면 골대를 향해 집중해서 자신의 길을 놀면서도 닦아놓을 만큼 능력도 됩니다. 거기에 뒤끝이 없고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위트로 받아들이며 사건을 타파하는 재간꾼의 기질도 있습니다. 당장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죠. 물론 그 정도가 조금 심한 건 있어서 망설일 시간에 즐기고 놀아버리겠다, 앗싸리 제쳐둔다!는 느낌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면으로도 과감성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희생하는 것에 취미가 없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딱히 책임감이 강한 것도 아니지만, 한 가지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고, 자신 역시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 타입의 사람이라 타인과 연결고리를 위해 어느 정도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하겠지요. 그래서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면도 있고, 무작정 자신이 희생하면 일이 풀릴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고가 희생 하나로 연결되는 바보를 보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희생이 리소스적으로 아깝다고 느끼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을 생각하는 면모가 생깁니다. 이타적이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필요는 한데, 그것이 막 이기적이진 않는 정도, 최소한의 도리와 윤리가 있어서 사람 지키고 가려는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면 이득이지요. 나쁠 것 없습니다. 사람은 곧 자산입니다.
콜튼은 현명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나 만나는 건 정말 특별한 의미가 없을 때고, 자신과 관련 있는 상황에서는 신중해지는 타입입니다. 묘하게도 이런 이기적인 이타심이 타인의 마음을 사고, 인간관계를 넓혀주는 것 같네요. 사람의 눈치를 볼 수 있다는 건 영리하며 타인의 욕구를 잘 읽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콜튼에게서 어떤 희망이나 힘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믿음이 콜튼의 무의식에도 남아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헬레니아로 돌아온 것은 애정, 의무, 책임 같은 것들이 아니라 어쩐지 그냥 못 다한 일이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이 기분은 그가 겪어온 여정 안에 있는 타인이 남긴 발자취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Q. 늘 본인 위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가 캠페인이 종료되면서 본인의 위에 아무도 없게 되었는데 요기에서 심경의 변화같은 게 있을지...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첫인상은 환장하겠다, 미치겠다 같은 느낌인 것 같아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같은 외침이 들려오는 것도 같아요. 하 참나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머리를 싸매다가도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타닥타닥 쳐내고 그리고 다시 하 왜이렇게 됐지??? 진심 노이해; 같은 마음이었다가 다시 일 밀려오면 어어어 홍수나겠다 싶어서 또 뚜닥뚜닥 막기를 반복하는 느낌인 것 같네요. 이거 싫어 안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이 엿보이는데 하필 일처리 능력이 좋은 바람에(!) 그리고 자신의 신분도 있고 역할도 있고 다른 사람의 기대 같은 기타 등등이 있어서 울면서라도 해치우는 모양입니다.
심정만 놓고 보자면 내 위에 이제 아무도 없어... (막...막...)이겠네요
내 위에 왜 아무도 없지 책임자 내놔 하늘에서 책임자 좀 내려주면 좋겠다 벌러덩~ 하고 싶을 것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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