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펠타누님!
파울로는 변형과 파괴를 통해 평화를 주도하려는 인물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더 나아지고, 안정되고, 평화롭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절단하거나 버리는 조치를 해야하는 거죠. 파괴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처럼요. 뱀이 허물을 벗는 건 낡은 피부를 버리는 것이고, 사람도 손 쓰기 어려운 질환의 경우 어딘가를 자르며 질병이 번지지 않게 손을 씁니다.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나 절망의 시대, 절망이 눈이 보이는 세계에서는 더욱 무엇이 문제인지 또렷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파울로는 세상의 조율자라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해와 배려, 존중을 통해 만들어내는 싸움 없는 평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겠네요. 절망의 잔당들을 필요로 하는 절망의 추종자이자 흑막이라는 포지션은 그에게 세상의 중심을 바로잡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방식은 그릇되었을지라도 자신의 행동원리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질서유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고, 과감한 행동을 선보이며(내가 해야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의식) 세상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질서악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규율과 신념이 있고,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의지 역시 충만한 사람이죠. 그러나 신념과 의지가 지나쳐 광증이 되었고, 평화를 바라면서 모순되게도 가장 먼저 타인에게 손을 쓰고, 파괴적이고, 해를 끼치기 때문에 출발점이 된 신념과 무의식에 잠겨있는 목적이 긍정적이었다 한들 선인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질서유지를 위해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자기자신을 누르고 살 수는 있을지라도 언제든 세상이 틀려먹었다, 돌이킬 수 없다고 느껴지면 본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악의와 절망이 문제인 것이지요. 이 주제를 너무 깊이 생각하다가 스스로 절망에 빠져 추종하는데 이르고 만 것 같습니다. 피를 봐서라도 썩아빠진 근간을 고치겠다는 마인드가 있어서, 선행이나 자비 같은 긍정적인 정신보다 과격한 방식이 우선됩니다. 여기서 죄책감은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자신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고, 수정중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보니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믿음을 가질 수 없어서 타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본능처럼 선행됩니다. 본디 인간을 믿고자 했다가 실망한 케이스이기에 엔딩 시점인 절망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작은 변화와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인간의 도약을 지켜보겠다고 돌아선 것이지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습니다.
완벽주의에 성취욕이 강하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증명하고 일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줄 수는 있지만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며, 타인과 생각을 나누긴 해도 교감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 생명에 대한 존중이 희미한 편으로 보입니다. 죗값을 치러야할 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생명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키는 쪽이라고 할까요. 그가 동물을 사랑하거나 다른 생명을 위하기 때문에 내버려 두는 건 아닌 듯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순위를 정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나름대로 상식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에게 가장 실망하고 사람으로 인해 절망했기 때문에 최우선 타겟이 인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래 거친 성정인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점잖고 귀족적이고 우아하며 추하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악인에 대한 가능성에서 출발한 절망인 만큼 끝까지 이해해 보려는 구석이 있었고,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은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법도 알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없다고 느껴졌기에 내던졌을 뿐, 사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괜히 일이 복잡해지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는 위기상황에도 강하고 영민하며 신속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길이 보인다고 해야할까요. 사람이기에 고민도 있고 번민도 하지만 일단 거기서 벗어나면 자신이 해야할 일이 확실히 보이는 편입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목적이 중요하며, 위험을 뛰어넘는 위기관리 의식도 좋아 세상을 이끄는 엘리트의 자질이 충만하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는 사람을 존중해 줍니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상대의 호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할 것 같아요. 맡은 일을 성실하게 끝마치고 싶어하는 욕망이 크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보다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1순위로 둡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다수와 생각이 맞지 않아 충돌이 불가피할 경우에 자신만의 방식을 드러내게 되는 쪽으로 보이네요. 보험들어 두는 것을 선호하고(안정적인 것을 추구), 만일의 최소화하기 위해 위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여러번 돌리는 타입으로도 보이네요.
파울로는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순환을 위해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엘리트라는 의식도 있었고, 회의적인 시선을 가졌지만 오히려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가능하게 하여 영리한 사람이 될 수 있었죠. 유머를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 줄도 알고, 사람들의 어깨에서 긴장을 빼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경직된 구조에서는 바라는 만큼의 효율이 나오지 않기에 터득한 것에 가까워 보이긴 해요. 본인도 남들과 어울리는 감각을 즐기는 면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제몸 바쳐 일어서지도 않았겠죠. 나만 잘 살면 되는 일인데요. 그는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을 관철하고 올바른 의지를 유지하고 싶었던 인물입니다.
+ 추가로 읽어주심
이상적인 자신이 무너진 순간부터-변호사로 머물게 된 그때부터- 어쩌면, 자신의 목표가 엇나갔기 때문에 작은 균열이라 생각했던 것이 도미노처럼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과 엇나가는 자기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견고한 사람일수록 균열에 예민하고 쓰라려하는 법이지요. 주변에 그를 지지하고 케어해주는 사람이 있었을지라도 스스로 내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상황이 무난하고 평범했더라면 파울로는 나름대로 선하고 괜찮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성적이고 그린듯한 매너와 사람에 대한 박식한 지식도 보여주었을 것 같고, 강연도 자주 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은근히 무대체질인 것 같아요. 남들이 자신을 바라볼수록 자신감이 차는 편이고, 도전의식도 강하게 받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감화되게 만들고,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뛰어넘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지 기대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철저한 것을 좋아하여 연구도 아낌없이 했겠지요. 그렇지만 안정적인 상황이 무너지면서 파울로를 둘러싼 환경이 모조리 변해버렸고, 파울로도 거기에 맞춰 변화하고, 진화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문 : 사람 되려면…………… 조언
아쉽게도 혼자의 힘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네요. 본인의 신념이 한 번 꺾이고 느슨해지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자의식이 강해서 쉽게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만물에 대한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온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 같네요. 마음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하고 생각부터 먼저 나가기 때문에 차갑고 회의적인 시각이 디폴트입니다. 나중에서야 아차 싶은 마음이 드는 쪽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경우는 주변에 파울로만큼 기가 세거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매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본인도 능글능청스러운 면이 있어서 보통으로는 되지 않고, 그보다 한 수 위거나 진정으로 욜로하는 사람이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법을 알려준다거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신념이나 규율이니 복잡한 것에 얽히지 말고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명상의 시간이나 반대로 규율을 깨버리는 환락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깨져보거나 말리는 느낌이 들어야 변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마냥 다정한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감기진 않을 것 같아요. 너무 무르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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